묵시, 독립운동에 목숨 바친 숨은 영웅들께 바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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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유갑순 열사 일대기는 그의 거룩한 정신을 되새기려는 후손들의 열정으로 출발하였으나 시작부터 어려운 여정이었습니다. 직계 혈족은 물론 친족, 인척을 찾을 길이 없고 공개된 기록물들도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른 보안상의 이유로 열람조차 할 수 없었기에 처음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유 열사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군자금 모금책으로서 활동한 임무의 특성상 신상정보가 기밀에 부쳐졌던 까닭에 활동기록을 찾는 데도 한계가 따랐습니다. 본적 강화에서 경성으로 올라와 본격적인 독립활동을 펼쳤던 계기나 누상동 노상에서 체포되기 전까지의 행적 등 어느 자료나 정보조차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일말의 흔적이 될 만한 단서들을 찾기 위해 주변 인물들의 후손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빛도 없이 사라져간 이름이지만 분명하게 살아 숨 쉬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만날 수가 있어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의 집터에 덩그러니 남은 굴뚝을 찾아내고, 지역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활동 이력을 연결짓고, 상해임시정부 교통국 경성 담당을 맡던 이원직 열사 등 주변 인물들의 행적을 추적하며 포착한 단서들을 좇아 한 발짝씩 내디뎠습니다.
처음에는 잘못 기록된 정보를 입수하고 연결고리를 찾느라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유 열사는 고향 강화에서 사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학원에서 교원과정을 밟았는데, 당시 매일신보와 신한민보에 게재된 유 열사 체포 관련 기사에는 경신학교 재학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털끝만 한 기대를 안고 현재의 서울 경신고등학교를 방문해 관련 기록을 다 뒤졌으나 헛걸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곳에도 수많은 독립유공자의 피 흘린 역사가 함께한 사실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독립유공자들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숨은 영웅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 앞에 그저 숙연해질 따름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오천 년은 전쟁과 질곡의 역사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일제강점기는 가장 치욕적이면서도 가장 잔인했기에 길이 남을 민족항쟁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어느 날 불시에 쳐들어 와서 수탈과 만행을 저지르며 민족 말살을 꾀했던 일본. 지형적으로는 이웃이지만 우리에게 가장 뼈아픈 상처를 남긴 나라입니다.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은 무수한 핍박에 굴하지 않고 일제강점기를 벗어나 해방에서 독립으로, 또한 새로운 국권을 수립하는 출발점으로 이끌었습니다. 일제에 항쟁했던 수많은 순국선열의 피와 눈물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결코 지금의 안녕과 풍요를 누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소중한 목숨을 공중에 날리는 새털처럼 가벼이 여길 수 있었던 그들의 애국심. 죽음의 순간도 기쁨으로 받아들였던 그들의 숭고한 민족정신을 우리 후손들이 길이길이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흘린 피는 역사 속에 영원히 존재하고 그 안에 우리의 존재가 있습니다. 역사학자 이덕일 선생이 ‘누군가는 뒤에 오는 세대를 위해 씨를 뿌려야 한다. 또 누군가는 미래를 위해 거름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꽃을 피운 미래 세대는 자신을 위해 씨를 뿌리고 거름이 되었던 선조들을 건국의 정신으로 삼는다. 몸은 비록 죽었어도 희생자의 정신은 그렇게 역사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먼저, 유갑순 열사 일대기 출간을 기획하고 총지휘한 독립운동유갑순기념관사업추진위원회 유열규 위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자료 수집에 협조해주신 경신고등학교 한지민 교감 선생님을 비롯한 행정실무팀 관계자분들, 현장취재에 도움을 주신 사)국사바로알기중앙회 구자호 이사님과 덕포리 지도자 및 지역주민들께 감사드리며, 이번 집필 과정에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최병요 회장님, 홍석기 교수님, 인터뷰에 응해주신 독립유공자기념사업회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끝으로, 이 책을 독립운동의 숨은 영웅들께 바칩니다.
임인년(壬寅年) 새해 아침에 김명화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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