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갑순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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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갑순 독립투사 [심문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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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77회 작성일 23-08-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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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920년 11월 11일 柳甲順 訊問調書 問 本籍, 住所, 出生地, 身分, 職業, 氏名, 年齡ハ如何. 答 本籍 京畿道江華郡下道面德浦里番地不詳. 出生地 同上. 住所 京城府樓上洞百五十三番地. 身分 兩班. 職業 無職業. 姓名 柳甲順. 年齡 當二十六年. 問 官吏, 公吏, 議員ニハアラサルカ. 答 ナシ. 問 爵位, 勳功, 年金, 從軍記章ヲ有セサルカ. 答 ナシ. 問 是迄刑事處分, 起訴猶豫又ハ訓戒放免ヲ受ケタルコトナキヤ. 答 アリマセヌ. 問 學歷ハ如何. 答 鄕里ノ私立普通學校ヲ卒業シ十九歲ノ時, 京城學院ニ於テ約六ケ月間許リ勉學致シ マシタ迄テアリマス. 問 官公吏ト爲リシコトアリヤ. 答 去ル大正五年十二月江原道平康郡南面亭淵里ナル合成義塾ノ敎員ト爲リ本年二月迄 勤メ居リマシタ. 夫レカラ本年七月朝鮮總督府巡査ヲ拜命シ警察官敎習所ニ入リ同 年九月一日鐘路警察署勤務トナリマシタ. 問 朝鮮獨立ニ關シ奔走セシハ巡査トナル已前カラテアリシヤ. 答 左樣. 本年陰四月カラテアリマス. 問 如何ナル動機カラ其ノ樣ナ考ヘヲ起コセシカ. 答 目下入監中ナル李元稙ト云フ者ハ府內都染洞ニ居タ者テ醫者テアリマシテ, 私ノ友 人權世重ト云フ者カ電車テ怪我ヲシテ李元稙方テ治療ヲ受ケ居マシタトキ, 私ハ度 度李方ヘ權ヲ見舞ヒマシタノテ自然李元稙ト懇意ニ爲リマシタ. 然ルニ本年陰四月 末頃李元稙ハ私ニ對シ自分ハ上海假政府ノ交通局長ト氣脈ヲ通シ同地テ出來ル獨立 新聞等ヲ當地ニ於テ配布スル役ヲ爲シ居ルモノナルカ, 君モ自分ト一緖ニ運動シテ 吳レヌカトノ勸メニ仍リ, 私ハ夫レニ同意致シマシタノテアリマス. 問 其後李元稙ト共ニ如何ナル行動ヲ執リシカ. 答 其際李ハ私ニ對シ目下獨立新聞, 其他ノ書類カ黃海道ノ沙里院マテ來テ居ルカ費用 カナイノテ取リ寄セルコトカ出來ヌノテ困ルトノ話テアリマシタカラ私ハ李ニ其ノ 費用ニ充ツルヘク金六円ヲ遣リマシタ處, 李ハ取寄セタト云フテ私ニ獨立新聞及假 政府ノ官報トヲ見セマシタカラ私ハ其ノ新聞ヲ數十枚ト官報ヲ四枚許リ貰ヒマシタ. 問 其ノ新聞及官報ハトウシタカ. 答 私カ一讀ノ後ニ私方隣ノ柳陳珪ニ渡シ, 何處カニ隱シテ吳レト賴ミ置キマシタ. 柳 ハ其ノ內容ハ分リマセヌ. 問 新聞ヤ官報ヲ其ノ儘ニ渡シタルヤ. 答 外ノ新聞反古ニ包ンテ渡シマシタ. 問 夫カラ如何セシカ. 答 其後私ハ用事アッテ亭淵里ニ歸リ十日間計リテ歸京シ, 權世重ニ聞クト李元稙ハ警 察ニ引致サレタト云フコトテアリマシタ. 問 夫レハ何時ナリシヤ. 答 陰ノ五月ノ二十日頃ト思ヒマス. 問 夫レカラトウシタカ. 答 夫レテ李元稙ト私トハ格別何等ノ行動モセスシテ脈カ絶ヘマシタカ, 其ノ已前ニ於 テ文吉ニ對シ私ハ李元稙トノ關係ヲ話シテ居リマシタカ, 李カ引致サレタコトノ話 シハ致シマセヌ. 夫レカラ私ハ文吉ニ命シテ亭淵里ノ金君郁及ヒ黃學老方ヘ軍資金 募集ニ遣リマシタ. 問 文吉ハ文南圭トモ云フカ. 答 ソレハ私ハ知リマセヌ. 問 同志ノ者ハ幾人アリヤ. 答 金立中ト沈興燮, 朴日門, 文吉, 安敎烈, 任澤準, 金永錫ノ者ニハ私ノ行動ヲ話シ マシタノテ何レモ贊成シタ人テアリマス. 問 尙ホ朴熙舜, 李朝旭ナル者ニモ話シタル趣ナルカ如何. 答 其者等ニハ單ニ狀況話ヲシタノテ共ニ行動ヲ執レト云フタノテハアリマセヌ. 問 警察官ト爲ッタノハ如何ナル考ヘナリシカ. 答 李元稙カ引致サレタノテ私ハ落膽シテ其後ハ運動ヲ罷メマシタカ, 更ニ警察ニ這入 リマシテカラ, 更ニ心カ變リ警官ト爲リ居リテ獨立運動ヲ爲サハ交通等ニモ便利テ アルトノ考ヘカラ再ヒ運動スルコトニ致シマシタ. 問 金立中, 其外ノ者カ贊成シタノハ何時頃ナリヤ. 其ノ人別ニ付一一申立ヨ. 答 金立中, 沈興燮, 金永錫, 李朝旭何レモ警官敎習所ノ同期生テアリマシテ朴熙舜ハ 已前カラノ巡査テアリマシタ. 夫レテ警官敎習所內テハ金立中等ニ對シ單ニ世間話 シトシテ獨立運動ニ關係シテ働イテハトウカト話シマシタカ, 私カ現ニ運動シ居ル ト云フ事ハ申シマセヌ. 私ト沈ト金立中ノ三人ハ敎習所ヲ二ケ月テ卒業シテ三名共 當署詰ヲ命セラレマシタノテアリマス. 問 安敎烈モ巡査テハナイカ. 答 左樣テアリマスカ, 同人ハ陰五月五日ニ鐵原テ巡査ノ試驗ヲ受ケニ出マシタトキニ 私ト同宿シタノテ其時私ハ同人ニ自分ノ行動ヲ話シテ贊成セシメマシタ. 問 夫レカラ他ノ者ニハトウカ. 答 他ノ者ヘハ陽曆十月下旬頃夫夫話ヲシテ贊成セシメマシタノテアリマシテ金永錫カ 江華島ヘ赴任スル際私ハ同人ノ寄宿舍ヲ尋ネテ參リマシタトキニ同志タル血書ヲ取 リマシタ. 其時同人ニ官報一枚ヲ渡シ置キマシタ. 夫レカラ金立中, 沈興燮, 朴日 門等ハ一週間內ニ血書セヨト命シマシタノテ其ノ期間內ニ何レモ血書シテ吳レマシ タ. 問 其ノ血書ハ是レニ相違ナイカ. 此時本職ハ差押第六號血書人名書ヲ被告人ニ示シタリ. 答 夫レニ相違アリマセヌ. 問 此ノ血書ハ何ノ爲メカ. 此時差押第七號ヲ被告人ニ示シタリ. 答 是レハ獨立運動ノ爲メニシタモノテハアリマセヌ. 私自分ノ決心トシテ陰五月十六 日ニ血書シテ置イタモノテアリマス. 問 血書人名ノ上ノ同ト云フノハ如何. 答 何レモ同志ト云フ意味テアリマス. 右讀聞カセタルニ相違ナキ旨申立テ左ニ署名拇印シタリ. 被告人 柳甲順 作成日 大正九年十一月十一日 於京城鐘路警察署 訊問者 朝鮮總督府道警部補 豊原辰吉 [번역문] 류갑순(柳甲順) 신문조서 [문] 본적, 주소, 출생지, 신분, 직업, 성명, 연령을 말하라. [답] 본적 경기도 강화군 하도면 덕포리 번지 불상. 출생지 위와 같다. 주소 경성부 누상동 15번지. 신분 양반. 직업 무직. 성명 류갑순 연령 26세. [문] 관리, 공리, 의원은 아닌가. [답] 아니다. [문] 작위, 훈공, 연금, 종군기장을 가지고 있는가. [답] 없다. [문] 지금까지 형사처분, 기소유예 또는 훈계방면된 일은 없는가. [답] 없다. [문] 학력을 말하라. [답] 고향에서 사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세 때에 경성학원에서 약 6개월쯤 공부 했을 뿐이다. [문] 관공리가 된 일은 있는가. [답] 지난 1916년 12월에 강원도 평강군 남면 정연리에 있는 합성의숙(合成義塾_의 교원이 되어 금년 2월까지 근무했다. 그리고 금년 7월에 조선총독부 도순사가 되어 경찰관교습소에 들어가 그해 9월 1일부터 종로경찰서에서 근무했다. [문] 조선독립에 대하여 활동한 것은 순사가 되기 이전부터인가. [답] 그렇다. 금년 음력 4월부터이다. [문] 어떤 동기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답] 현재 감옥에 있는 이원직이란 사람은 경성부내 도량동에 살면서 의사였는데 내 친구 권세중이란 사람이 전차에서 부상하여 이원직의 집에서 치료를 받고 있을 때 나는 가끔 이(李)의 집으로 권(權)을 문병했는데, 자연 이원직과 친숙하게 되 었다. 런데 금년 음력 4월경에 이원직은 나에게 자기는 상해임시정부 교통국장 과 기맥을 통하고 상해에서 발간하는 독립신문 등을 이곳에 배포하는 역할을 맡 고 있는데, 그대도 자기와 함께 활동해 달라고 권유하므로 나는 그것에 동의했 던 것이다. [문] 그 뒤 이원직과 함께 어떤 행동을 했는가. [답] 그 때 이(李)는 나에게 현재 독립신문, 기타 서류가 황해도 사리원에까지 와 있 는데 비용이 없어서 가져오지 못하여 곤란하다는 말을 듣고, 나는 이(李)에게 그 비용을 대려고 돈 6원을 주었더니, 그 뒤 이(李)는 가져왔다고 하면서 독립 신문 및 임시정부의 관보를 보여주었으므로 나는 그 신문을 수 십장, 관보를 4 장쯤 받았다. [문] 그 신문 및 관보는 어떻게 했는가. ]답] 내가 한 번 읽고 나서 내 이웃의 류진규에 주고, 어디엔가 숨겨두라고 일러 놓 았다. 류(柳)는 그 내용을 모른다. [문] 신문과 관보를 그대로 주었는가. [답] 다른 헌 신문지에 싸서 주었다. [문] 그리고 어떻게 했는가. [답] 그 뒤에 나는 볼일이 있어서 정연리로 돌아왔다가 열흘쯤 뒤에 경성으로 와서 권세중에게서 들으니 이원직은 경찰에 끌려갔다는 것이었다. [문] 그것은 언제인가. [답] 음력 5월 20일경으로 생각한다. [문] 그리고 어떻게 했는가. [답] 그래서 이원직과 나는 특별히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맥이 끊어졌는데, 그 이전 에 문길에게 나는 이원직과의 관계를 말했었는데, 이(李)가 검거된 일은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문길에게 지시하여 정연리의 김군욱 및 황학노의 집으로 군자금을 모집하러 보냈다. [문] 문길은 문남규라고도 하는가. [답] 나는 그것은 모른다. [문] 동지는 몇 사람이나 있는가. [답] 김립중과 심흥섭, 박창문, 문길, 안교렬, 임택준, 김영석 등에게는 나의 행동을 말했는데, 모두 찬성한 사람이다. [문] 그리고 박희순, 이조욱이라는 사람에게도 말했다는데 어떤가. [답] 그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상황 이야기를 했고, 함께 활동을 하라고 한 것은 아니 다. [문] 경찰관이 된 것은 어떤 생각에서 한 것인가. [답] 이원직이 검거되었으므로 나는 낙담하고, 그 뒤에는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다 시 경찰에 들어갔으므로 또 마음이 변하여 경관이 되어서 독립운동을 한다면 왕 래에도 편리하다고 생각하고, 다시 활동하기로 했다. [문] 김립중 그 밖의 사람이 찬성한 것은 언제쯤인가. 그 사람들은 따로 따로 말하 라. [답] 김립중, 심흥섭, 김영석, 이조욱은 모두 경관교습소 동기생이며 박희순은 이전 부터 순사였다. 그런데 경관교습소 안에서는 김립중 등에 대하여 단순히 세상 이야기로써 독립운동에 관계하여 활동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으나, 내가 현재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나와 沈과 金立中 세 사람은 교습소를 2 개월에 졸업하여 세 사람 다 종로경찰서에 근무하게 되었다. [문] 안교렬도 순사가 아닌가. [답] 그렇지만 그 사람은 음력 5월 5일에 철원에서 순사시험을 치려고 나왔을 때에 나와 함께 잤기 때문에 그 때에 나는 그에게 자기의 행동을 말하고 찬성을 얻어 내었던 것이다. [문]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했는가. [답] 다른 사람에게는 양력 10월 하순경에 각각 이야기해서 찬성을 얻을 것인데, 김영석이 강화도로 부임할 때에 나는 그의 기숙사로 찾아갔을 때 동지로서의 혈서를 받았었다. 그 때 그에게 관보 한 장을 주었었다. 그리고 김립중, 심흥섭, 박창문 등에게는 一주일 내에 혈서를 쓰라고 명령했는데 그 기간 내에 모두 혈 서를 써 주었다. [문] 그 혈서는 이것이 틀림없는가. 이 때 본직은 압수 제6호 혈서 인명서를 피고인에게 보이다. [답] 그것이 틀림없다. [문] 이 혈서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 때 압수 제7호증을 피고인에게 보이다. [답] 이것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한 것이 아니다. 나 자신의 결심으로서 음력 5월 16 일 혈서를 해 두었던 것이다. [문] 혈서 인명의 위에 同이란 무엇인가. [답] 다 동지라는 뜻이다. 위를 읽어서 들려주었더니 틀림없다고 진술하고 다음에 서명 무인하다. 피고인 류 갑 순 작성일 1920 11월 11일 경성종로경찰서에서 신문자 조선총독부 도경부보 풍원진길(豊原辰吉) 1.2 1920년 11월 18일 柳甲順 訊問調書(第二回) 問 文吉ニ命シ亭淵里ノ金君郁·黃學老ヨリ軍資金ト稱シ金員ヲ强取セシ事實ニ付申立 ヨ. 答 本年陰五月中文吉ニ對シ私ハ豫テ所持シ居リタル上海假政府官報一枚ト獨立新聞一 枚ト夫レカラ私カタンサン紙ヲ以テ書キ置キシ脅迫文書二枚トヲ交付シ, 是レヲ持 テ亭淵里ノ金君郁及黃學老方ニ到リ軍資金ヲ受取リ來イト命シマシタ. 私ハ同月 五·六日頃安敎一ト鐵原邑內ニ於テ會合セシ際, 後日京城ヨリ人ヲ派遣スルカラ其 際ハ助力シ吳ル, ヘク約束ヲ爲シ居タルヲ以テ, 文吉ニ先ツ安敎一ヲ訪ヒ同人カラ 金君郁ト黃學老ノ家ヲ聞キ行ケト敎示致シマシタ. 問 其際文吉ハ金ヲ受取リ歸リシカ. 答 文吉ハ一ト晩泊リテ歸京シ, 黃學老ハ不在テ面會スルコトカ出來ス. 金君郁カラ現 金四十円丈ケ受取ッテ來タト云フテ私ニ四十円ヲ吳レマシタ. 問 其金ハトンナ金ナリシカ. 答 五十錢銀貨ト十円札ト一円札テアリマシタ. 問 文吉ニハ旅費ヲ與ヘサリシカ. 答 文吉ニハ十円ヲ與ヘマシタ. 問 三十円ノ金ハトウシタカ. 答 前ニ李元稙ニ六円ヲ遣リマシタ金ヲ他カラ借リ居リマシタノテ夫レヲ返金シ, 尙ホ 二十四円ハ私方生活費ニ消費致シマシタ. 問 夫レカラ重ネテ文吉ヲ金君郁, 黃學老方ヘ遣ハシタルハトウカ. 答 二回目ハ陰六月中テアリマスカ, 其際文吉カ歸京シテ金君郁カラ取ッテ來タト云フ テ六十円ヲ私ニ吳レマシタ. 問 慥ニ六十円丈ケナリシカ. 答 左樣テアリマス. 問 其ノ六十円ハ何ニ費消セシカ. 答 文吉ニ基金ノ內テ十一円ヲ與ヘ, 尙ホ同人出發ノ際四円ヲ渡シマシタ. 問 殘額ハ如何セシカ. 答 其當時ハ私カ保管シテ居リマシタカ陰八月中豫テ私ト獨立運動ニ付別個ニ奔走シ居 タル金俊煥卽チ仮名金德浩カ滿洲ニ歸ルトキニ旅費カナイノテ私ハ八十円ヲ與ヘマ シタノテ其際遣ヒマシタ. 問 金俊煥ハ何ノ役ヲ爲シ居タ者カ. 答 今テハ吉林省軍政府ノ特派員ト云フテ居リマシタ. 問 夫レカラ黃學老カラ金七十円ヲ送リシ事アリヤ. 答 陰七月頃テ私ハ敎習所ニ居タトキニ樓上洞ノ家ヘ郵便爲替テ送リ來タノテ私ハ受取 リマシタ. 夫レハ豫テ金俊煥カ黃學老ニモ出金方ヲ談シ, 其後私ハ金俊煥ニ金君郁 ト黃學老方ヘ出金方ノ督促ヲ爲サシメタノテ黃學老ハ上京致シ, 私ニ相談致シマシ タカラ, 私ハ早ク出金セネハナラヌト云フタノテ送金シタモノテアリマス. 問 陰八月二十三日頃文吉カラ金君郁ノ出金ヲ受取リシヤ. 答 七十円ヲ文吉カラ受取リマシタ. 問 前ノ七十円ト其七十円ヲトウシタカ. 答 其際文吉ニ二十円ヲ與ヘマシタ. 問 約八十五円ノ金ハ如何セシカ. 答 李元稙入監中, 同人妻ニ生活費トシテ十円ヲ與ヘマシタ. 夫レカラ目下居所不明テ 當時淸進洞ニ居タ浮浪者ト認ムヘキ金石然ト云フ者ニ十三円ヲ遣リマシタ. 夫レカ ラ二十八円計リハ巡査奉職中ノ貯金ト共ニ殘リ居リマシテ約三十四円位ハ種種ナル 雜費等ニ消費致シマシタ. 問 吉林軍政府又ハ上海假政府ヘ送金セシコトナキヤ. 答 ソウ云フ處ニ連絡ヲ執リ居ル者モアリマセヌカラ金ヲ送ッタコトモアリマセヌ. 問 此ノ司令書二通ハ其方カ造リシモノカ. 此時本職ハ差押第一號證ヲ被告人ニ示シタリ. 答 陰九月十五日頃金石然カラ貰フタノテアリマス. 問 此ノ活字刷ノ督促書二通及特派員ノ章ハ如何. 此時本職ハ差押第二號, 第五號證ヲ被告人ニ示シタリ. 答 督促書ハ司令書ト共ニ陰九月十五日頃, 金石然カラ貰ヒマシタ. 夫レカラ特派員ノ 章ハ陰五月頃, 矢張リ金石然カラ貰ヒマシタ. 問 トウ云フ理由テ貰フタカ. 答 金石然ハ從來二·三回面會シタコトカアル者テ, 同人モ獨立運動ト稱シ浮浪者テア リマスカ, 本年陰五月初私ニ對シ金ヲ出ス者ハナイカト聞キマシタカラ, 私ハ鄕里 江華郡下道面沙器里ニ居ル友人金學濟ナル者ハ其思想アル者ニ付一度訪ネテ見ヨト 申シマシタ處, 石然ハ金學濟方ヘ參リマシタカ本人ハ不在テ其ノ父ニ面會セシカ, 目下金ハナイカラ陰九月頃再ヒ來テ吳レト云フタトノ事テ, 私ニ特派員ノ章ヲ預ケ タノテ金石然ハ再ヒ陰九月頃來ル筈テアリマシタ. 夫レカラ金石然ハ陰九月ニ再ヒ 來テ私ニ赤十字會ノ領收證カアルカト聞キマシタカラ私ハ同人ニ領收證ヲ遣リ, 同 人カラ司令書ト督促書トヲ吳レタノテアリマス. 問 李元稙カラ貰フタ赤十字會領收證用紙ハ是レナリヤ. 此時本職ハ差押第四號證ヲ被告人ニ示シタリ. 答 是レニ相違アリマセヌ. 問 此ノタンサシ紙李元稙名義ノ文書ハ其方カ造リシモノカ. 此時本職ハ差押第三號證ヲ被告人ニ示シタリ. 答 是レハ陰八月十九日ニ私カ三枚ヲ作成シタノテ二枚ハ文吉ヲシテ金君郁及黃學老ヘ 交付セシメ, 此ノ殘リ一枚ハ宛名人任隣準ト云フ亭淵里ノ者テアリマシテ, 文吉カ 訪問シタカ本人カ不在テアッタノテ持チ歸リマシタノテアリマス. 問 此ノ郵便貯金通帳ハ如何. 此時本職ハ差押第九號證ヲ被告人ニ示シタリ. 答 是レハ前ニ通帳カアリマシタカ紛失シタノテ更ニ新タニ下付ヲ乞ヒ, 其後十五円ヲ 預ケタモノテ, 其合計金ノ內, 金君郁, 黃學老カラ取ッタ金モ加ハリ居ルモノテア リマス. 問 夫レカラ金立中其他ノ同志ト共ニ何カ行動シタ事ハナイカ. 答 何ニモアリマセヌ. 何レモ血書シテ同志ト爲ッタ丈ケテアリマス. 問 其方ハ同志ノ者ニ對シ上海假政府ニ赴クコトヲ勸メシコトナキヤ. 答 私ハ當時カラ假政府員ト連絡ヲ執ラントシツ, アリマシタノテ, 未タ何等ノ連絡ハ アリマセヌノテシタカ同志者ヘハ何レ假政府カラ來ル者カアレハ君等カ上海ヘ行ク 希望カアラハ斡旋シテ遣ルト云フテ居タ丈ケテアリマス. 右讀聞カセタルニ相違ナキ旨申立テ左ニ署名拇印セリ. 被告人 柳甲順 작성일 大正九年十一月十八日 於京城鐘路警察署 신문자 朝鮮總督府警部補 豊原辰吉 [번역문] 류갑순 신문조서(제二회) [문] 문길에게 명령하여 정연리의 김군욱, 황학로에게서 군자금이라고 하면서 돈을 강탈한 사실에 대하여 진술하라. [답] 금년 음력 5월 중 문길에게 나는 전부터 가지고 있던 상해임시정부의 관보 1 장과 독립신문 1장, 그리고 내가 탄산지로 써 두었던 협박문서 2장을 주고, 이 것을 가지고 정연리의 김군욱 및 황학로의 집에 가서 군자금을 받아 오라고 명 령했다. 나는 그달 5·6일경에 안교일과 철원읍내에서 만났을 때, 뒷날 경성에 서 사람을 보낼 것이니, 그 때에는 협력해 주도록 약속되어 있었으므로 문길에 게 먼저 안교일을 찾아 가서 그에게 김군욱과 황학로의 집을 물어서 가라고 지 시했다. [문] 그 때에 문길은 돈을 받아가지고 왔었는가. [답] 문길은 하룻밤을 자고 경성으로 돌아와서 황학로는 부재중이어서 면회하지 못하 고, 김군욱에게서 현금 40원을 받아 왔다고 하면서 나에게 40원을 주었다. [문] 그 돈은 어떤 돈이었는가. [답] 50전 은화와 10원짜리와 1원짜리였다. [문] 문길에게 여비는 주지 않았는가. [답] 문길에게는 10원을 주었다. [문] 30원의 돈은 어떻게 했는가. [답] 전에 이원직에게 준 돈 6원을 다른 사람에게서 빌렸으므로 그것을 돌려주고 또 나머지 24원은 우리집 생활비로 소비했다. [문] 그리고 거듭 문길은 김군욱, 황학로의 집으로 보냈는데 어떤가. [답] 두번째는 음력 6월 중이었는데, 그 때 문길은 경성으로 돌아와서 김군욱에게서 받아온 60원을 나에게 주었다. [문] 확실히 60원뿐이었는가. [답] 그렇다. [문] 그 60원은 어디에 썼는가. [답] 그 중에서 문길에게 11원을 주고, 그리고 그가 출발할 때에 4원을 주었다. [문] 잔액은 어떻게 했는가. [답] 그 당시는 내가 보관하고 있었는데, 음력 8월 중에 내가 이전에 나와 독립운동 에 대하여 별개로 활동하고 있는 김준환 곧 가명 김덕호가 만주로 돌아갈 때 여 비가 없었으므로 나는 80원을 주었는데, 그 때 썼다. [문] 김준환은 어떤 구실을 하고 있던 사람인가. [답] 지금은 길림성 군정부의 특파원이라는 것이었다. [문] 그리고 황학로가 돈 70원을 보낸 일이 있는가. [답] 음력 7월경으로 내가 순사교습소에 있을 때에 누상동 집으로 우편환을 보내서 내가 받았다. 그것은 이전에 김준환이 황학로에게 돈을 내도록 말하여 그 뒤 나 는 김준환에게 김군욱과 황학로의 집에 돈을 내도록 독촉하도록 했기 때문에 황 학로가 경성으로 와서 나에게 상의하므로 나는 빨리 돈을 내야 한다고 해서 송 금한 것이다. [문] 음력 8월 2, 3일경에 문길에게서 김군욱이 낸 돈을 받았는가. [답] 70원을 문길에게서 받았다. [문] 앞의 70원과 그 70원을 어떻게 했는가. [답] 그 때 문길에게 20원을 주었다. [문] 약 85원의 돈은 어떻게 했는가. [답] 이원직의 입감(入監) 중 그의 아내에게 생활비로 10원을 주었다. 그리고 현재 소재불명인 당시 청진동에 있던 부랑자라고 할 수 있는 김석연이라는 사람에게 13원을 주었다. 그리고 28원쯤은 순사질을 하고 있을 때의 저금과 함께 남아 있 는데, 약 34원쯤은 여러 가지 잡비 등으로 썼다. [문] 길림성의 군정부 또는 상해임시정부에 송금한 일은 없는가. [답] 그런 곳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돈을 보낸 일도 없다. [문] 이 사령서 2통을 그대가 만든 것인가. 이 때 본직은 압수 제1호증을 피고인에게 보였다. [답] 음력 9월 15일경 김석연에게서 받은 것이다. [문] 이 활자로 인쇄된 독촉서 2통 및 특파원의 기장은 어떤가. 이 때 본직은 압수 제2호, 제5호증을 피고인에게 보였다. [답] 독촉서는 사령서와 함께 음력 9월 15일경에 김석연에게서 받았다. 그리고 특파 원의 기장은 음력 5월경 역시 김석연에게서 받았다. [문] 어떤 이유로 받았는가. [답] 김석연은 종래 두·세 번 면회한 일이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람도 독립운동을 일 컫는 부랑자인데, 금년 음력 5월초 나에게 돈을 낼 사람은 없겠느냐고 물어서, 나는 고향인 강화군 하도면 사기리에 있는 친구 김학제라는 사람은 그런 사상이 있는 사람이니 한번 찾아가 보자고 했더니 김석연은 김학제의 집에 갔더니 본인 은 부재중이었고, 그의 아버지를 면회했는데, 현재 돈이 없으니 음력 9월경에 다시 오라 했다고 하면서 나에게 특파원의 기장을 맡겼으므로 김석연은 다시 음 력 9월경에 올 것이었다. 그래서 김석연은 음력 9월에 다시 와서 나에게 적십자 회의 영수증이 있느냐고 물어서 나는 그에게 영수증을 주고, 그에게서 사령서와 독촉서를 받았던 것이다. [문] 이원직에게서 받은 적집자회 영수증 용지는 이것인가. 이 때 본직은 압수 제4호증을 피고인에게 보였다. [답] 그것이 틀림없다. [문] 이 탄산지, 이원직 명의의 문서는 그대가 만든 것인가. 이 때 본직은 압수 제3호증을 피고인에게 보였다. [답] 이것은 음력 8월 19일에 내가 3장을 작성했는데, 2장은 문길을 시켜서 김군욱 및 황학로에게 주고, 그 남은 1장은 받을 사람이 임린준이라는 정연리 사람이었 는데, 문길이 방문했으나 본인이 부재중이었으므로 가지고 돌아왔었다. [문] 이 우편저금통장은 어떤가. 이 때 본직은 압수 제9호증을 피고인에게 보였다. [답] 이것은 전에 통장이 있었으나 분실했기 때문에 새로 다시 교부해 달라고 해서, 그 뒤에 15원을 예치한 것으로 그 합계금 중에는 김군욱, 황학로에게서 받은 돈 도 들어있다. [문] 그리고 김립중 기타의 동지와 함께 행동한 일은 없는가. [답] 아무 것도 없다. 모두 혈서를 쓰고 동지가 되었을 뿐이다. [문] 그대는 동지가 된 사람에게 상해의 임시정부로 가도록 권유한 일은 없는가. [답] 나는 당시부터 임시정부원과 연락을 취하려고 했었으나 아직 아무런 연락이 없 었으므로 동지에게는 어떤 임시정부에서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대들이 상해로 갈 생각이 있다면 알선해 주겠다고 했을 뿐이다. 위를 읽어서 들려주니 틀림없다고 진술하고 다음에 서명 무인하다. 피고인 류갑순 작성일 1920년 11월 18일 경성종로경찰서에서 신문자 조선총독부 도경부보 풍원진길(豊原辰吉) 以下의 1.3 1920년 11월 19일 1.4 1920년 11월 25일 1.5 1920년 12월 15일 1.6 1920년 12월 17일 1.7 1920년 12월 25일에 관한 내용은 첨부파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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