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갑순기념사업회

공지사항

“묵시, 소름 끼치도록 섬세한 상황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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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지후 기자
댓글 0건 조회 929회 작성일 23-07-19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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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소개] 독립군자금 모집책 활동 보여주는 귀중 자료 “우리들 청년이 묵시할 때가 아니다. 서로 함께 조선독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 임시정부 총감부 명의 특파원증을 보이며 사람들을 설득했던 유갑순(1892~1921). 그의 스물아홉 해 생애는 독립운동가 유봉진과 이원직을 마음에 둔 동지적 관계로 힘을 합쳐 실천한 믿음의 행보였다. 소설 <묵시>는 실존 인물인 유갑순 열사의 독립투쟁을 그린 작품이다. 한 많은 일제강점기, 불의에 굴하지 않고 아나키스트로서의 순수성과 독립을 향한 불굴의 의지로 삶을 불살랐던 유 열사. 그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억하려는 후손들에 의해 마침내 소설로 복원하는 데 성공하였다. 전직 기자였던 김명화 작가는 1년 넘게 자료조사와 취재에 매달렸다고 한다. 김 작가는 “지난 한 해는 100년 전 유 열사의 순수하고 강직한 영혼에 접속하려 혼신을 기울였던 시간이었다”면서 “유 열사가 임시정부의 독립군자금 모집책으로 활동한 임무의 특성상 신상정보가 기밀에 부쳐졌던 까닭에 자료 발굴에 어려움이 따랐다”고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유 열사는 강화 화도면 덕포리 출신으로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강화지역은 예로부터 비옥한 토양과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먹을 것이 풍부했다. 그 옛날 강화에서 사립보통학교를 보낼 정도로 학식이 높은 집안이었고 부친 또한 한문학에 조예가 깊었다. 전주류 씨 집성촌인 강화에서 무난하게 지내기만 하면 금수저의 삶이 보장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기독교 사상을 접하면서 시대적인 조류에 일찍이 눈을 떠 경성으로 유학해 교원교육을 받는다. 무지한 백성이 일제의 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교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맞닥뜨린 일제의 부당한 ‘조선교육령’에 낙담하고 직접 독립투사로 나설 것을 결심한다. 그의 단호하고 망설임 없는 행보는 마침내 임시정부 교통국의 국내 교통연락원 이원직 의생과 결탁하여 독립군자금 모집책으로서 활약하게 된다. 독립군자금은 전쟁을 수행하는 데 막대한 무기와도 같은 요소다. 당시 교통국의 임무는 국내외 기밀문서, 군자금 등을 임시정부에 연락하고 송달하는 일이었다. 유 열사는 이원직 의생과 의기투합해 경성교통국 설치에도 책임자로 활약한다. 그러던 중 사리원과 안동에 설치한 교통국과 연계할 가장 중요한 경성교통국 설치를 눈앞에 두고 참모인 이원직 의생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유 열사는 그를 구출해내고 독립군으로서 활동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도순사가 되어 적진으로 뛰어든다. 그렇게 파견된 종로경찰서에서 동료들을 회유해 동지로 규합하고 조직원을 확대하며 치밀한 전략을 전개해 나간다. 활동 범위가 커질수록 그의 뒤를 쫓는 일본 경찰 미와 와사부로 경사의 집요한 미행으로 결국 1921년 3월 11일 종로통 한복판인 누상동 노상에서 체포된다. 유 열사는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같은 해 6월 27일 차디찬 감방에서 순국하였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그는 오직 사랑하는 조국과 동지들의 안위를 염려하였다. 오, 동지들이여! 난 침묵과 친구가 되면서 나를 기억하게 되었소. 동지들을 떠올리며 우리가 부를 돌림노래는 오직 ‘조선독립’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소. 아, 순간이 다가오고 있소. 자, 바람아 순간을 지나 대한에게로 가라! 그곳엔 어딘가를 향해 헤엄치는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는데 나는 그 물고기의 꼬리를 보는 그 붉은 빛의 순간 속에서 내 운명이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소. 그때 나는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희미하게 내 뱃속에서 울려 올라오는 돌림노래들을 기억해냈소. 내 이름은 ‘대한’이오. ‘조선독립’은 나의 노래요, 내 조국을 부르는 나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소. 우리 민족이 맥없이 짓밟힌 그 날 이후, 나는 내 삶이 평행선 위에 있지 않음을 기억하게 되었소. 그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오. 나는 세상에 대해, 또 내가 기억하는 모든 존재에게 대한의 이름을 알렸고 외쳤소. 천신만고 끝에 대한의 이름이 숙명적인 나의 이름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오. 반복적으로 마음에 품은 것은 언젠가 우리 앞에 나타난다고 하지 않소? 나는 내 몸에 열린 감각이 이 순간을 보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렸소. 그래서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라오. 일제는 저항의식을 무력화하고 독립운동가들의 의지를 꺾으려 했지만, 온갖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천인공노할 반인권적인 일제의 폭력을 어찌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그러함에도 기적이 먼 데 있지 않은 것은 우리가 독립을 이루어냈다는 사실이다. 목숨을 버려야만 얻을 수 있다면 누가 봐도 합리적인 거래라고 말할 순 없다. 그렇지만 스스로 맘먹는다고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위해 바친 사랑을 ‘기적’이라 부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사탄의 키질에 덤불처럼 날아갔다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핍박하는 일제에 심장을 내주었다면 조선의 독립은 결코 이룰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이제는 세대가 바뀌었고 우리는 암울했던 고통과 치욕에 몸부림치던 그 시절의 역사를 듣고 읽는 간접경험을 통해서만 학습한다. 굵직한 사건 위주로 접근하고 있지만, 그 기나긴 세월은 평범한 하루하루를 바탕으로 한다. 지금껏 세상을 살다 간 수많은 사람 중에는 주목받지 못한 사람, 광복을 염원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일제에 아첨하며 살아가던 이도 있었다. 그리고 일본인 앞에서도 정의로움과 당당함을 지켜낸 이가 있었는가 하면 그 반대인 사람도 있었다. 이렇듯 우리의 항일독립운동사에는 백범 김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과 같이 알려진 인물도 있지만, 여전히 역사의 뒤안에서 잊히는 뭇 열사, 의사, 의열투사들이 많이 있다. 유갑순 열사도 우리에게 낯선 존재일 정도로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영웅이다. 유 열사처럼 이름도 없이 사라져가는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일이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소설 <묵시>는 땅에 떨어진 한 알의 밀알이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 비바람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끈질기게 독립에 대한 열망을 품고 독립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열사들의 활약이 존재했다. 이태룡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묵시>를 읽고 두 번 놀랐는데, 한 번은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거짓 없이 쓴 글이라는 점이었고, 또 한 번은 소름 끼치도록 섬세한 상황 묘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묵시>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독립군자금 모집책의 활동을 사실에 근접한 기록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의 활약상을 짐작케 하는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갑순 열사의 일대기를 기획하고 독립운동유갑순기념관사업추진위원회를 발족시킨 유열규 위원장은 “유 열사가 순국한 지 100여 년 만에 상훈이 추서되었지만, 유족을 찾지 못해 더 안타까웠다”면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독립의 소중함을 일깨우지 않는다면 훗날 후손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독립의 소중한 것들을 박탈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강조했다. 애국지사 한 개인의 희생정신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의미와 기쁨을 되새기는 일을 게을리한다면 자신의 삶을 깊이 사랑하도록 이끌어줄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묵시>는 딱딱한 전기문이 아닌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입체적 구성으로 다양한 시간대에서 사건의 반전과 이를 암시하는 복선이 깔려 있어 행간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그래서 유갑순이라는 인물과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인 뻔한 스토리에 머물러 있지 않다. 게다가 가장 중요함에도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독립군자금 모집책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은 우리의 독립운동사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해준다. 독립군자금 모집책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유 열사의 활동 배경을 통해 항일운동을 끈질기게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을 살펴보는 데도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