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갑순기념사업회

공지사항

“우리들 청년이 묵시할 시대가 아니다. 서로 함께 조선 독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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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45회 작성일 23-07-2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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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강화의 인물] 애국지사 유갑순 1962년부터 현재까지 국가보훈처가 포상한 독립유공자는 모두 17,588명이다. 이 중 인천지역 포상자는 99명에 불과하다. 그만큼 세월에 묻힌 독립유공자들이 많다는 의미다. 때문에 상당수 독립운동가들이 해방 직후부터 최근까지도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순국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그 행적이 재조명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개개인에 대한 사료가 적은 데다 새롭게 발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돼 독립운동가 발굴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강화군은 미포상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나라를 위해 희생한 독립유공자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2021년에는 일제강점기 일본 군경과 의병투쟁을 벌인 미포상 독립유공자 30명을 발굴하였으며 이분들에 대한 포상신청이 진행 중이다. 한편 뒤늦게나마 공적을 인정받아 훈·포장이 추서되더라도 항일투쟁에 몸 바치다 이른 나이에 절명해 후손을 보지 못했거나 어려운 삶을 살다 후손마저 뿔뿔이 흩어져 찾지 못하는 독립유공자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강화군 출신 독립유공자 중 훈·포장을 전달하지 못한 분들도 17명에 이른다. 이번 호에서는 이 17명 중 한 분인 유갑순 지사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유갑순 지사의 본관은 전주다. 1892년 10월 22일(일제시대 인물카드에는 1895년생으로 기록) 경기도 강화유수부 화도면(인천광역시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 544번지에서 태어나 이후 경기도 경성부 누상정(서울시 종로구 누상동)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고향에 있는 사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에 있는 경신학원을 다닌 후 1916년 12월에 강원도 평강군 남면에 있는 합성의숙(合成義塾)의 교원으로 1920년 2월까지 근무했다. 1920년 5월에는 중국 상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교통국장 연계하여 국내에서 독립신문등을 배포하고 있던 이원직(李元稷)의 권유로 독립운동에 참여, 황해도 사리원에 있는 독립신문 등을 서울로 운반하기 위한 비용을 이원직에게 제공하였다. ​이후 독립신문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관보 등을 받아 이웃의 류진규(柳陣珪) 등에게 배포하였으며, 박창문(朴昌門) 등과 대한민국 임시 정부 및 독립운동 등의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동지를 규합하였다. 유갑순 지사는 음력 5~6월경 두 차례에 걸쳐 동지인 경신학교(敬新學校) 재학생 문길에게 정연리(亭淵里)의 김군욱(金君郁) 및 황학로(黃學老)의 집으로 가서 군자금을 모집할 것을 지시하였고, 이 가운데 일부는 중국의 길립성 군정부(軍政部) 특파원 김준환에게 만주로 돌아가는 경비 등으로 제공하였다. 또한 6월과 9월 15일경 김석연(金石然)에게 적십자의 영수증을 제공하고 독촉서(督促書)와 사령서(辭令書) 등을 제공 받아 활용하였다. 7월에는 독립운동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호랑이 굴이나 다름없는 조선총독부의 도순사가 되어 경찰관 교습소에 들어갔으며, 9월부터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근무하였다. 독립운동을 위해 위장근무를 택한 것이다. 유 지사는 9월부터 서울 종로경찰서에 근무하게 되자 교습소 동기생이면서 함께 종로경찰서에 근무하는 김입중(金立中) 등을 동지로 규합했다. 이런 독립운동 활동이 발각되면서 같이 활동하던 동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 일로 조선총독부 순사직을 가진 동지인 김영석·김입중·심흥섭·안교열 등과 함께 해직되었다. 1921년 3월 11일 경성지방법원의 판결문에 따라 ‘정치범죄처벌령 위반 및 공갈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한편, 유갑순 지사는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총감부 명의 특파원증을 보이며 “우리들 청년이 묵시할 시대가 아니다. 서로 함께 조선 독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자”고 설파했다고 한다. 유 지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신념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다. 안타깝게도 유갑순 지사는 복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21년 6월 27일 옥중에서 숨을 거뒀다. 상당수 독립운동가들의 경우와 같이 독립을 위해 헌신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그 행적이 재조명되어 2018년 정부에서 건국훈장을 추서하였으나 29세의 젊은 나이에 후손 없이 옥사하는 바람에 그의 유족을 찾지 못해 아직까지 훈장을 건네지 못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유갑순 지사의 숭고한 나라 사랑 정신을 기억하기 위한 움직임이 유 지사의 본적지(화도면 덕포리)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화군 화도면 덕포리 마리산초등학교 총동문회와 덕포리이장단, 체육회 등 마을 지도자 20여 명이 뜻을 같이하여 ‘독립운동유갑순기념관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유갑순 지사의 일대기를 책으로 발간했다. 작년 5월 10일 초판 1쇄가 진행돼 지역 곳곳에 배포된 「묵시」가 그것이다. 「묵시」가 발간되면서 유 지사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는 첫걸음은 뗀 셈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시작은 유 지사의 본적지 지역주민들이 했으나 이제는 우리 강화군민 모두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강화군에서도 유갑순 지사를 기억하기 위한 일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길 바란다. 또한 유갑순 지사뿐 아니라 세월에 묻힌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기억하는 일에도 계속해서 앞장서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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